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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직' 소리가 감성 있어요"
LP(Long Playing Record)로 노래를 듣고 있던 20대 청년들의 후기다. 이들은 '지지직 소리' '튀기는 소리' 등으로 LP를 표현했다. 잡음 없이 깨끗한 디지털 음원에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이따금 들려오는 잡음을 더한 소리에 매료된 것이다.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사이에서 뉴트로(New+Retro) 붐이 일고 있다. 뉴트로는 과거의 문화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해 새롭게 즐긴다는 뜻이다. 20세기 유행했던 것들이 현재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끝없이 새로움과 트렌디함을 탐색하고 구축하는 MZ가 새로이 눈을 뜬 곳은 바로 'LP'다. 복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LP가 뉴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21세기에, 기껏해야 CD 정도 만져봤을 MZ들이 어쩌다 '생소한 물건'인 LP에 빠지게 됐을까.
중장년층의 '추억의 소품' LP가 부활하면서 트렌드도 발맞춰 따라가고 있다. 이제 LP 음반을 들려주고 판매하는 매장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LP를 재생할 수 있는 공간까지 탄생해 MZ들의 '핫플'을 형성하고 있다. 21세기에 재해석된 LP를 직접 만나러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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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음악?… '보고 즐기는' LP가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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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뮤직컴플렉스서울 안녕인사동점'. 직접 LP를 플레잉 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LP 카페다. 입구부터 대기석이 마련된 모습이 핫플을 연상케 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대기석이 꽉 찰 정도이며 30분~1시간 정도 웨이팅이 발생한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 알던 카페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한쪽 벽면엔 LP가 빼곡히 진열돼 있었고 다들 헤드셋을 쓴 채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큰 규모에 비해 조용한 분위기가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천장도 조명도 빨간색으로 MZ들이 찾는 '힙한' 느낌을 연출했다.
모든 테이블에는 LP판을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각자 취향대로 LP 음반을 골라와 자리에서 감상하는 구조다. 턴테이블이 생소할 손님들을 위해 테이블 위에는 사용법이 적힌 안내책자도 함께 놓여 있었다.
정지현 뮤직컴플렉스서울 이사는 "신청곡을 틀어주는 타 매장과 달리 손님이 직접 원하는 LP판을 가져와 본인 자리에서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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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를 겨냥한 힙한 카페인 만큼 젊은 손님이 전부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손님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 손님들 사이에 중장년층 손님들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인사동에 위치해 외국인 손님들도 꽤 방문한 모습이었다. 직원에 따르면 성수기에는 10명 중 3~4명 정도가 외국인 손님이라고 한다.
이날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한 이모씨(20대)는 "둘 다 LP를 잘 모르지만 데이트코스로 친구 추천을 받고 왔다"며 "시끄러운 다른 카페와 달리 조용히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LP를 감상한 소감에 대해 묻자 이씨는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LP는) 노래를 빠르게 스킵하지도 못하니까 차분해지는 기분"이라며 "특유의 '지지직' 소리가 좋다"면서 웃었다. 이어 "옛날 노래는 잘 몰라서 메이저 앨범을 듣고 있었다"며 외국 가수 저스틴비버와 트로이시반 앨범을 소개했다.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앨범은 단연 가수 찰리푸스의 음반이라고 한다. 직원은 "인기 앨범은 (듣기 위해) 경쟁도 있다"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라라랜드처럼 유명 영화 OST도 생각보다 많이 찾으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카페에는 약 2만장 정도의 LP판이 있다고 한다.
아빠는 '추억'에, 아들은 '감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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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들과 함께 방문한 부자지간 손님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테이블에 따로 앉아 각자 취향대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해관(51)씨는 "예전에 LP를 즐겨 들었는데 다 처분하는 바람에 추억을 회상하러 왔다"며 "어제도 수원에 있는 LP 매장에 갔었는데 여기가 앨범이 많다고 해서 와봤다"고 말했다.
아들 이기주씨는(20) "LP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아빠를 따라서 왔다"며 "LP 특유의 '튀기는 소리'가 감성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 보헤미안랩소디를 통해 알게 된 록 그룹 퀸의 음반을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루이 암스트롱, 냇킹 콜, 토니 베넷… 재즈를 좋아해서 잔뜩 갖고 왔다"며 "예전에 재즈가 나올 때 LP 형태로 들어왔었기 때문에 재즈는 LP로만 듣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재즈 앨범들을 하나씩 짚으며 설명하는 이씨의 모습에서 지난 추억들이 보이는 듯했다.
정 이사는 "매장 오픈때 부터 꾸준히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LP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써 뿌듯하다"며 "LP를 접할 기회가 없던 젊은 세대들이 이곳에서 직접 플레이도 해보면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매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