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소설은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예약을 걸어 놓았고요. 나온 김에 아이 참고서랑 제가 읽을 책 몇 권 샀습니다.”
13일 저녁 8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40대 여성 김모씨는 “오늘쯤엔 책이 있을까 해서 와 봤다”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한강 작가의 매대에는 책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옆쪽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 매대는 책을 들춰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출판계는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대표작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책들은 지난 10일 수상 이후 14일 오후 2시까지 교보문고(31만부)·예스24(33만부)·알라딘(20만부) 등 총 84만부가량 팔렸다.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2016년 부커상 수상 때도 한강 작가 책이 많이 팔렸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하루 매출이 2003년 도서정가제 시행 후 역대 최고를 찍고 있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와 관계 있거나 그가 언급한 다른 책들도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한승원 작가 작품 판매량은 노벨상 발표 후 3일간 110배 상승했다. 한강 작가 인터뷰가 실린 문학잡지 ‘악스트(Axt)’ 2022년 1/2월호는 잡지 판매 1위에 올라섰다. 한강 작가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언급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편지 내용이 알려지면서 14일 아침에만 1000부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이런 ‘한강 르네상스’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노벨상 발표 직전까지 출판계에선 ‘역대 최악의 불황’이라는 말이 인사말처럼 오갔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올해 2분기 가구(1인 이상)당 서적 구입비는 월평균 9272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았던 2020년(2분기 1만1227원)보다도 17.4% 감소한 액수다. 한 가구가 한 달에 책 사는 데 채 1만원도 안 쓴다는 이야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2023년 8월) 성인 종합독서율(교과서·참고서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 비율)은 43%로, 1994년 조사 개시 이래 가장 낮았다.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 종이책으로 좁히면 1.7권에 불과했다.
전반적인 책 소비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최근 반등 움직임도 감지된다. 가구 서적 구입비는 지난해(2분기 8077원)와 비교하면 늘었다. ‘한강 효과’가 반영되면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출판계는 최근 MZ 사이에서 독서를 ‘힙한’ 문화로 즐기는 ‘텍스트힙(Text Hip)’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텍스트힙이란 글자(text)와 멋지다(hip)를 결합한 단어다.
‘한강 관련 작품만 팔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김기욱 예스24의 도서사업1팀장은 “톨스토이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도서 등을 찾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 문학과 출판계 전반에 활기가 불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