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마케팅 회사 디와이(DY) 기획 직원들은 들뜬 마음으로 퇴근하려 한다. 그 순간 사무실로 신동엽 대표와 배우 강하늘이 들어온다. 디와이 기획에 이미지 컨설팅을 맡긴 고객 강하늘이 하필이면 이때 미팅을 하고 싶단다. 직원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신동엽 대표는 “선약 있는 사람은 가라”며 쿨한 척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나랑 같이 회사 살릴 사람들은 남아서 일하자”고 덧붙이며 본심을 드러낸다. 직원들은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는 얼굴로 회의실로 향한다.
쿠팡플레이 ‘직장인들’ 5화의 한 장면이다. ‘직장인들’은 오합지졸의 한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MBC)의 ‘무한상사’, 유튜브와 왓챠에서 방영한 웹드라마 ‘좋좋소’, ‘에스엔엘’(SNL)의 ‘엠지(MZ)오피스’가 그러했듯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운 상황으로 현실 직장인들에게 공감과 쾌감을 불러 일으키며 인기몰이 중이다.

‘직장인들’은 신동엽이 운영하는 마케팅 회사 디와이 기획에 연예인이 이미지 컨설팅을 맡기는 에피소드를 기본 형식으로 삼는데, 대본 반, 애드리브 반으로 구성된다. 지난 2월22일 첫 공개 이후 입소문을 타고 시청량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쿠팡플레이 쪽 설명을 들어보면, 공개 직후 쿠팡플레이 인기작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달 29일 공개한 마지막 6화는 시청량이 1화보다 8배 상승했다. 예고편, 하이라이트 등 관련 콘텐츠들은 5200만 뷰를 돌파했다.
현실의 직장인들이 실제로 회사에서 겪을 법한 상황을 코믹하게 과장하면서 공감을 사는 게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습관적으로 신용카드를 집에 두고 오는 상사, ‘야자타임’을 기회 삼아 작심 발언을 했다가 오히려 타박을 받는 부하 직원, 사내 복지 향상에 대한 요구를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 퇴근 시간을 앞두고 시작되는 눈치싸움 등이다. 김원훈 주임이 퇴근 시간에 쳐들어온 고객에게 댓글 읽기를 빙자해 시원하게 욕을 뱉는 장면이나 현봉식 대리가 “저희 퇴근 시간은 지켜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여기에 출연자들의 애드리브가 더해지며 ‘빵 터지는’ 재미를 만든다. 특히 김원훈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는 눈치 없이 선을 넘는 주임 역할을 맡았는데, 자주 선을 넘는 만큼 툭하면 꾸지람을 듣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4화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최지우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1·4 후퇴 때”라고 말하는가 하면, “자녀분이 스무살이 되면 최지우씨는 85세가 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속을 긁기도 한다. 이런 애드리브에 다른 출연자는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최지우는 “이거 몰래카메라냐”며 당황해 한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연출을 맡은 김민 피디(PD)는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사회 생활 코드를 녹인 코미디를 하고 싶었는데, ‘직장인들’을 통해 어느 정도 보여드린 것 같다”고 밝혔다.


‘직장인들’ 이전에도 직장 소재 코미디는 안정적으로 흥행했다. ‘무한도전’의 ‘무한상사’가 대표적이다. ‘무한상사’도 ‘직장인들’과 비슷하게 권위적인 부장 유재석과 억울한 만년 과장 정준하, 상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눈치 빠른 사원 노홍철과 그에게 늘 치이는 하하 등의 현실적인 캐릭터와 베테랑 코미디언들의 애드리브로 사랑받았다. ‘에스엔엘’의 ‘엠지오피스’는 엠지세대를 풍자하는 데 초점을 맞춰 특정 연령층을 비하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 등 다양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화제가 됐다. 유튜브와 왓챠에서 방영된 ‘좋좋소’는 중소기업의 ‘웃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시즌5까지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직장 소재 코미디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상사’나 ‘직장인들’ 같은 프로그램은 회사의 모습을 매우 과장된 형태로 그리긴 했지만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미묘한 웃음 포인트들을 포착해낸다”며 “이런 점이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지속적이고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젊은 세대의 부정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었다면, 최근의 콘텐츠들은 직장 상사, 부하 직원, 그 사이에 낀 중간 관리자 등 각자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보여주며 더욱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